-
대우 K-카 프로젝트 : 티코 이전에 존재했던 8개월간의 기록
2026.02.03
- 대우 LD-100 [MB100] 프로젝트 : 기아 봉고의 아성에 도전한 대우의 상용차 2025.10.14
- 대우 R100 미니밴 프로젝트 : 실현되지 못한 도전 2025.09.08

1980년대 후반, 한국 자동차 산업은 정부의 ‘200만 원대 국민차 보급 계획’ 발표와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대우자동차 역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의 경차 규격을 뜻하는 단어를 차용해 코드명 ‘K카(K-Car)’라는 신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당시 대우의 플래그십 세단인 로얄 살롱의 디자인을 수행했던 최수신 디자이너가 이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전담하게 되었는데, 대형 세단을 다루던 디자이너가 가장 작은 차급인 경차 개발을 총괄하게 된 것은 당시 사내에서 이 프로젝트가 가졌던 비중을 짐작게 한다.

당시 경쟁사였던 현대자동차가 포니나 엑셀, 소나타 등 주력 모델의 디자인을 이탈리아의 거장 주지아로에게 맡기던 것과 달리, 대우는 이 국민차 프로젝트를 완전 독자 개발로 밀어붙였다.
경차인 K-카는 물론이고 소형과 중형 사이의 허리급인 J-카까지 자체 인력으로 디자인하려 했던 시도는 당시 국내 완성차 업계의 관행을 비추어볼 때 상당히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르망 프로젝트 당시 디자인의 주도권을 갖지 못해 갈증을 느꼈던 디자인팀은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이 프로젝트에 약 8개월간 매달렸다. 내부적으로는 ‘해볼 만하다’는 확신이 섰을 만큼 디자인 작업이 심도 있게 진행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회사의 경영 전략이 급작스럽게 수정되면서 프로젝트는 빛을 보지 못하고 전면 백지화되었다.

결국 우리 곁에 온 건 스즈키 알토를 베이스로 한 티코였지만, 최수신 디자이너의 회고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당시 더 큰 회사였던 현대조차 꿈꾸지 못했던 독자 개발을 대우가 먼저 이룰 뻔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 전략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갔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대한민국 독자 개발의 타이틀과 역사의 주인공이 현대가 아닌 대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못내 뼈아프게 다가온다.
©️2026 "인천의 자동차, 그 질주의 여정" 인천문화재단[실무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1990년대 초, 대우자동차는 ‘세계경영’이라는 이름 아래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군산 국가공업단지가 있었다. 1993년 4월, 대우는 이곳에 대규모 부지를 확보하고 승용차와 상용차, 그리고 향후 디젤엔진까지 생산할 수 있는 통합형 자동차 생산단지 [대우자동차 군산공장] 건설 을 추진했다.
MB-100은 당시 국내 상용차 시장에서 절대적 지위를 점하고 있던 기아 ‘봉고’를 직접적인 경쟁 대상으로 설정했다.
시장 요구를 반영해 차량의 총중량(GVW)은 2.2~2.8톤급으로 결정되었으며, 대우중공업의 DX 엔진 탑재가 잠정 확정되었다.

1995년 3월, 대형트럭 개발이 마무리될 즈음 대우는 ‘소형차 추진팀’을 신설하고 [MB-100]의 차량 콘셉트 개발에 착수했다.
초기 단계에서는 한국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설정했으나, 동시에 오스트리아 등 유럽 진출 가능성도 검토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스테이어(Steyr) M1 엔진의 탑재와 후륜구동(RWD) 구성이 확정되었다.
대우는 차량 설계 및 기술 고도화를 위해 다수의 해외 전문기관과 협력했다.
영국 로터스(Lotus)는 주행 성능과 서스펜션 세팅을, 이탈리아 이데아(IDEA)는 외관 디자인과 실내 패키징을, 영국 하우탈 휘팅(Hawtal Whiting)은 차체 구조 및 생산기술 자문을 담당했다.
이 시기부터 MB-100은 단순한 국내형 상용차가 아닌,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수출형 소형 상용차 개발 프로젝트로 성격이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후 대우 상용차 개발 기능이 군산에서 폴란드 현지법인 DMP(Daewoo Motor Poland)로 이전되면서, 사업의 중심도 한국에서 유럽으로 이동했다.
이에 따라 MB-100은 LD-100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유럽형 소형 상용차로 재정의되었고, 대우는 유럽 LCV 시장 진입을 목표로 현지 전략을 수립했으나,
상용차 생산 및 판매 경험이 전무했다. 이에 전문 기관에 시장조사를 의뢰한 결과, 현지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공동 개발이 최적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대우는 이에 따라 영국의 LCV 전문업체 LOV사를 파트너로 선정했다.
LOV사는 당시 영국 시장 점유율 2위, 연간 약 2만 대의 생산 능력을 가진 중견 제조사였다.
1996년 7월 협상이 개시되어 같은 해 9월 전략적 동맹관계가 체결되었고, LD-100 프로젝트는 이로써 대우의 유럽 상용차 진출을 위한 핵심 공동개발 사업으로 발전하였다.
LOV와의 전략적 제휴가 성립된 이후 LD-100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양산 개발 단계로 진입했다.
이 시기 대우는 유럽 현지 규격과 운용 환경을 반영하여 차량의 주요 사양을 구체화했다.
총중량(GVW)은 2.6~3.5톤급으로 조정되었으며, 구동방식은 기존 후륜구동에서 전륜구동(FF)으로 변경되었다.

차체는 실내 공간 확보와 안전 기준 충족을 위해 기존 1,860mm 전폭에서 [95.3] 1,995mm [96.9]로 확대되었고, 엔진은 초기에는 르노(Renault) G9T 디젤 엔진 탑재가 검토되었다.
그러나 르노와의 기술·공급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일정 지연이 발생했고, 1998년 11월 최종적으로 이탈리아 VM Motori의 R425SP 엔진이 채택되었다.
이 변경은 폴란드 현지 생산 시스템과의 기술 호환성, 그리고 유럽 배출가스 규제 대응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LD-100 프로젝트는 완성되지 못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의 자금난이 심화되었고, 1999년 그룹 부도 사태로 인해 폴란드 DMP 공장에서 진행 중이던 생산라인 착공 역시 중단되었다.
이로써 LD-100 개발사업은 기술 검증 단계에서 중지되었으며, 양산 준비에 필요한 자금과 조직이 모두 해체되었다. 이후 2004년, 과거 공동 개발 파트너였던 영국 LDV그룹이 대우 측의 설계 자료와 일부 생산 설비를 인수하였다.
LDV는 이를 기반으로 LDV 맥서스(Maxus)라는 상용차를 출시하였고, LDV 맥서스는
2011년 3월, LDV그룹은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 Motor)에 인수되었으며, 해당 차량은 이후 맥서스(Maxus) V80이라는 이름으로 재생산되었다.
©️ 2011 대우 '세계경영' 사례와 시사점 대우재단
'1995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대우 R100 미니밴 프로젝트 : 실현되지 못한 도전 (0) | 2025.09.08 |
|---|

1990년대 후반은 전 세계적으로 미니밴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였다.
특히 북미와 아시아 시장에서는 ‘패밀리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혼다 오딧세이, 도요타 시에나,
크라이슬러 보이저 같은 모델들이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혼다 오딧세이를 기반으로 미니밴 개발을 추진했는데,
그 프로젝트가 바로 R100 프로젝트다.
⸻
R100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설계나 시제품에 관한 자료는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995년 부평기술연구소에 「R-100 프로젝트팀」을 꾸려 다목적자동차 개발에 착수했다는 사실과, 1997년 당산동 (양평동) 대우자동차 디자인 포럼에서 목업 작업을 마친 것을 끝으로 이후의 개발 과정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

U100 [레조] 프로젝트가 실제 양산되어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 반면, R100은 구체적인 상품화 단계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는 당시 대우자동차가 겪던 재정적 어려움과 IMF의 여파가 컸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우는 글로벌 확장 전략에 제동이 걸렸고, 대규모 프로젝트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A100, P100, S100 프로젝트]
그 결과 R100은 목업 모델 제작을 끝으로 U100 [레조] 프로젝트에 통합되며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대우가 패밀리카 시장을 얼마나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
만약 R100이 실제로 출시되었다면,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미니밴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 스타렉스가 주로 상업적 수요를 중심으로 성장한 반면, R100은 보다 ‘승용차에 가까운 미니밴’이라는 포지셔닝으로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레조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대우의 라인업을 한층 강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
대우 R100 미니밴 프로젝트는 결국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1990년대 후반 대우자동차가 가진 비전과 야심을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사례다.
미니밴 시장을 선점하려는 시도가 좌절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오늘날에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미완의 프로젝트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당시 대우가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했는지, 그리고 한국 자동차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1995 출퇴근·레저·업무용 다목적 차시대 “성큼” 서울신문
©️1996 모터트렌드 10월 호 대우자동차 편
'1995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대우 LD-100 [MB100] 프로젝트 : 기아 봉고의 아성에 도전한 대우의 상용차 (0) | 2025.10.14 |
|---|